게임고촬 - 스타크래프트

work & game | 2006/07/16 14:14 | Posted by ND™
사용자 삽입 이미지


[1] 21세기의 검투사들

예로부터 불 구경과 싸움 구경이 제일 재밌다는 이야기가 있다. 싸움에는 물론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개인과 개인의 싸움이 있을 수 있고, 다수와 다수의 싸움, 말하자면 전쟁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스타의 싸움은, 이 두 가지를 모두 내포한다.


[2] 스타와 전쟁

스타는 기본적으로 개인과 개인의 싸움이다. 물론 팀플과 같이 다수 대 다수로 겨루는 경우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보여주는 시합, 그러니까 프로게이머들의 시합과 같은 경우에서는 일대일이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 결국 개인과 개인, 그 머리싸움이라고 할 수 있다.

거기서 그 개인간의 싸움은 '전쟁'이라는 형태로 시뮬레이트된다. 즉, 스타에서 각 개인은 각자의 전투를 지휘하는 총사령관의 역할을 수행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스타에서의 총사령관에 주어진 임무는 실제 전쟁에서의 총사령관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막중하다. 병력 양성과 조련, 물자의 보급, 적진의 정찰 및 전략 수립, 실전의 지휘 등의 모든 전투 상황을 총괄해야 한다. 실제로 총을 쏘거나 침을 뱉는 것만 스스로 하지 않을 뿐, 나머지의 모든 전투 지휘는 총사령관의 임무이다. 한 마디로 스타의 총사령관이란 단순히 전투의 총책임자가 아니라, 세세한 전투 상황을 모두 손수 엮어내야 하는 전쟁의 조율사라고 할 수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침은 얘들이 뱉는다 ]


덧붙여 그 총사령관들의 전략이 충돌하며 창출되는 '상황'만을 바라본다면, 그것은 다수와 다수가 맞붙는 전쟁 그 자체이다. 스타가 전쟁을 '시뮬레이트'하고 있다는 것은 더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전략 시뮬레이션이니까.)

사실 조금 아이러니한 것은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인 스타가, 되려 전쟁을 설명하기 위해 인용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딴지일보의 게시판에서, 기동성이 떨어지는 늪을 전장으로 택한 중기병들이 궁병들의 일제 사격에 패퇴한 전투를 설명하는 예시로 이런 문장이 쓰인 걸 본 적이 있다.

"발업 안된 질럿들이 한줄로 들어가다 스팀팩 맞은 마린한테 전멸했다고 보면 됩니다."

예시 멋지지 않은가?

사용자 삽입 이미지

[ 바로 이런 상황 ]


스타라는 게임을 플레이하다 보면, 정말 실제 전쟁과 유사한 부분이 많이 나타난다. 이건 워낙 관련된 문서들이 많으므로 간단하게만 적어보겠다.

첫번째는 보급의 중요성이다. 여기에서의 '보급'은 병력의 보급과 물자의 보급을 아우르는 의미이다. 이 보급은, 스타에서는 그야말로 승패 그 자체이다. 병력의 수급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가장 치명적인 타격이 일꾼들을 다수 잃거나, 혹은 일꾼이 물자를 가져오는 메인 건물 (테란이라면 커맨드 센터, 저그라면 해처리, 레어 등등..) 을 파괴당하는 것이라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사실 일대일 상황에서 초반에 일꾼을 다수 잃으면 제아무리 대단한 게이머라도 거의 회복이 불가능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show me the money 의 흔적이 보인다 ]


두번째는 정찰의 중요성이다. 즉, 상대의 상황에 대한 정보 입수를 말한다. 병력이 엇비슷하고 전체 전황이 크게 우열을 가리기 힘들 때, 결국 승패를 결정하는 것은 상대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느냐의 문제이다. 이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언젠가 치뤄진 온게임넷 프로리그 결승전에서, 박정석 선수가 맵 위의 전갈, 즉 중립동물 한 마리 때문에 정찰을 제대로 하지 못해 패배한 시합이 있었다. 박정석 선수에게는 정말 분통 터질 일이었겠고 상대인 이창훈 선수에게는 정말 하늘이 도우신 일이겠지만, 어쨌든 그만큼 정찰의 중요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이 녀석이 길을 막아서 질럿이 정찰을 못하고 죽었다 ]


세번째는, 물량의 중요성이다. 기본적으로 더 많은 병력이 우세하다는 것이다. 가장 뻔하지만 가장 중요하고, 단순한 문자적 의미 외로도 상당한 뜻을 내포한 이야기이다. 또한 전략의 차원뿐만이 아니라 전술의 차원에서도 통용되는 의미이기도 하다. 즉, 전체 전황을 놓고 볼 때 병력이 많다는 의미뿐만이 아니라, 국지적 공방전들에서도 되도록이면 '좀더 많은 병력' 이 상대의 '좀더 적은 병력'을 상대해 최대의 피해를 가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사실 모든 전술들은 결국 이 원리에 입각한 전술들이다. 레인지 유닛의 일점사 (순간적으로 '더 많은 유닛'들이 '소수의 유닛'을 상대하게 하는 방법이다) 라든가, 좀더 보급선이 가까운 곳을 전장으로 택하는 전술 (보급선이 가까우면 병력의 충원이 빠르며 상대적으로 더 많은 유닛을 확충할 수 있다), 양동 작전 등이 모두 이와 같다.

사실 이런 이야기들은 매우 잘 알려진 이야기들이다. 앞서 말했듯 전쟁과 스타의 유사점을 언급하는 문서들은 퍽이나 많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을 설명하는 예제로 사용되었을까.)

하지만 이 특성들을 꼭 '스타만의 특성'이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앞서도 말했지만 스타는 기본적으로 리얼타임 전략 시뮬레이션이고, 이 장르 자체가 원래 전쟁을 시뮬레이트하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굳이 저런 식으로 찾아내자면 어떤 전략 시뮬레이션이든 전쟁과의 유사점을 못 찾아낼 이유는 없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유독 스타가 그 예시로 빈번히 사용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스타가 워낙 유명하기 때문이다.


[3] 스타의 힘

어떤 게임이 이렇게까지 유명해지기란 쉽지 않다. 아니, 쉽지 않은 정도가 아니다. 스타를 제외하면 지금껏 유례가 없을 정도이다. 게임이라는 장르에 국한시키지 않더라도, 이 정도의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경우는 거의 손에 꼽을 정도라 할 수 있다. 예전에 비해 스타를 직접 플레이하는 사람들의 수는 다소 줄어들었다고 해도, 오히려 게이머들의 시청을 위해 만들어진 스타리그는 비교가 힘들 만큼 거대하게 성장했다. 억대 연봉을 받는 선수가 여러 명 존재할 정도이니 정말 대단하긴 하다. 스타가 외국에서 만든 게임이란 점을 감안하면 이는 거의 믿겨지지 않는 일이다.

사실 그 이유는 스타가 썩 잘 만들어진 게임인 탓도 있다.

일단 스타는 종족의 밸런스가 상당히 뛰어나다. 세 개의 종족이 존재하며, 이들은 각각의 개성을 지니면서도 어느 하나가 크게 우위를 점하지 않는 상성을 지니고 있다. 즉, 테란, 저그, 프로토스의 세 종족 중, 일반적으로 테란은 저그에게, 저그는 프로토스에게, 프로토스는 테란에 강한 상성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가위바위보 게임이라는 말을 종종 한다. 요즘 프로게이머들 사이에서는 이 밸런스가 조금씩 무너지는 상황이긴 하지만 말이다.) 너무 흔하고 다들 알고 있는 얘기이니 긴 설명은 필요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또한 유닛의 천적 관계가 잘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다른 강점으로 들 수 있다. 한 유닛만 왕창 뽑으면 승리할 수 있는 무적 유닛이 존재한다면,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은 정말 재미없어진다. (워크래프트에서의 옛날 오크 종족의 오거가 그 예이다.) 하지만 스타는 예외이다. 공중 유닛이 있고 지상 유닛이 있으며, 그 어떤 유닛이라도 천적이 존재한다. 즉, 유닛의 조합을 통해서만 전력이 극대화될 수 있다는 것을 뜻하며, 이는 다양한 전술의 사용을 가능하게 해준다. 즉, 보다 재미있는 '전쟁'을 가능케 하는 힘이라는 뜻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어느 쪽이 이길까? ]


하지만 이것은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다. 우리 나라에서, 스타라는 게임 때문에 창출되는 비용이 대체 얼마인가? (온게임넷이라는 거대 방송사와 수많은 게임방들을 생각해보면 말 그대로, 장난이 아니다.) 어떤 게임이 아예 하나의 문화적 현상으로 인지될 만큼 성공한다는 것은, 솔직히 단순히 게임만 잘 만들어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면, 이렇게까지 스타가 게임이라는 장르적 한계를 넘어설 만큼 유명해진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역설적으로 게임만이 가질 수 있는 힘 덕택이 아닐까 한다. 현대인들은 실제로 싸움의 기회가 많지 않다. 길거리에서 서로 맞붙어 주먹이라도 휘두르면 감방으로 가는 세상이니 말이다. 그러므로 대신 투쟁본능을 충족시켜 줄, 이른바 '스포츠'들이 있다. 모든 스포츠들은 기본적으로 다 이기는 것이 목표이다. 야구, 농구, 축구 할 것 없이 말이다. 룰이 다르고 경기 방식과 인원 등도 모두 다르지만, 결국 이기기 위해서 하는 경기라는 것은 마찬가지다. '승리'를 추구하는 것, 이것은 싸움이다.

하지만 사실 이 싸움들은 싸움답지 않다. 야구에서 공을 던지고 배트를 휘두르고, 축구에서 공을 차고 공을 걷어내고, 심지어 권투에서 주먹을 휘두른다고 해도... 이것들은 스포츠이다. 전쟁이 아니다. 사실 그래서 현대인들은 무언가 굶주려 있지 않았나 싶다. 투쟁 본능을 만족시켜줄 무언가에 말이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바로 가장 스포츠답지 않아 보이지만, 사실 그 무엇보다도 스포츠의 기본 목적에 가장 잘 부합하는, 전략 시뮬레이션이라는 게임의 한 장르이다. 아무리 싸움을 좋아한다고 해도 뒷골목에 취직하지 않는 이상은 실제로 싸울 수는 없다. 싸움은 흥미롭지만 대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전쟁의 경우는 더하다. 전쟁을 치르면 한 나라가 몰락하는 경우도 허다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다. 그래서 그 누구도 전쟁을 즐겁다고 말할 수는 없다.

스타, 더 나아가 전략 시뮬레이션이라는 장르는 바로 이 포인트를 놓치지 않았다. 스타에서는 상대를 전멸시킬 권리가 주어진다. 그것도 잘 조합된 전략과 전술을 사용해서 말이다. 한 마디로, 대가를 치르지 않고 전쟁을 치뤄볼 기회를 준다는 것이다. 그것은 대단한 매력이다.


[4] 검투사들 만세

싸움을 싫어하면서도 싸움에 열광하는 것이 나 스스로의 역설이다. 인정한다. 적어도 내가 애착을 갖고 있는 분야에 있어서는 확실히 그러하다. 승부를 낸다는 것, 지는 것은 죽는 것보다 싫다... 정도까진 아니지만 -_-; 한번 겨뤄보고 싶고, 더 나아가 이기고 싶어한다. 이 또한 누구나 그렇겠지만.

이렇게저렇게 사람에 치이고 서로 감정 상하는 싸움은 물론 싫다. 하지만, 스타에서의 싸움은 적어도 공평하지 않은가? 누가 플레이를 하든, 건물 하나와 네 마리의 일꾼이라는 지극히 공평한 조건으로 시작해야 한다. 그 이후의 전쟁은 모두 자기 자신의 몫이다. 지든, 이기든, 똑같은 조건으로 시작해 똑같은 조건으로 진행한 전쟁이니 순수한 자신의 역량 부족이라는 것이다. (맵핵은 잠시 잊자-_-) 그러므로 패배를 인정할 수 있고, 상대의 실력에 대해 감탄할 수 있다.

하지만 솔직히 그렇다고 해도, 지는 건 싫다. -_-; 사실 모든 '승부'에서 지는 것은 싫겠지만, 스타는 더 그렇다. 워낙 잘 만들어진 게임이기 때문에, 오히려 지는 것이 더 싫은 경향이 있다. -_-; 즉, 너무 전쟁을 잘 시뮬레이트해놔서, 내가 열심히 만든 유닛들이 피흘리며 쓰러져가고 열심히 지어놓은 건물들이 다 뽀개지는 광경을 보고 있자면 되려 속이 뒤집어진다는 얘기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컴퓨터 3종족 연합군에 무너지는 모습 ]


나는 스타를 그렇게 잘 하는 편이 아니다. 그래서 1:1을 하면 지는 경우가 제법 되고, 그럴 때마다 온몸의 피가 다 끓어오르는 부작용이 있다. 물론 연습을 통해 실력을 쌓으면 지는 횟수가 훨씬 줄긴 하지만, 그래도 전혀 패배를 하지 않을 수는 없다. 아주 현란한 게임 실력을 자랑한다 해도 100%의 승률은 낼 수 없다. 아주 높은 승률, 즉 9할 정도 되는 승률의 게이머가 있다고 해도, 열 번에 한 번은 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직접 플레이하지 않아도, 보는 것은 재미있다. 원래 어떤 승부를 구경하는 것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한쪽에 약간의 감정 이입이 되기 마련이다. (응원하는 선수가 있다면 더하고.) 그래서 감정을 이입한 쪽이 패하면 아쉬운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 정도의 아쉬움은, 실제로 자신이 경기하다가 패했을 때와 비하면 정말 새발의 피이다. 약간 아쉽긴 해도, 그야말로 멋진 승부군, 하면서 한발 물러서 감탄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대가'를 치뤄가며 경기를 해야 하는 당사자들은 피가 바짝 마르겠지만...



[남로당 게임특위]

[work & game] 카테고리에 있는 다른글 입니다.
Trackback address :: http://bizku.com/trackback/292

Comments List

  1. yuz 2006/07/16 15:45

    저도 스타크의 멀티 플레이는 요즘도 가끔 하는데, 아직도 재미있을 정도에요.

Write a comment.